작은 어촌 00시에 사시는 60대중반 윤00씨는 젊어서는 개인사업을 하다가 이제는 고향에 정착해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데 작년에 집을 신축하시면서 집지을 방위랑 터를 봐달라고 해서 찾아갔을 때 사모님께서 차를 내어오셔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즘은 명당자리 잡기가 어렵다면서요?”

하시면서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어느 해 동짓달 춥기도 상당히 춥던 어느 날 갑자기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노환으로 앓고 계시기는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 여러 가지걱정이 참으로 많았다고 했다.



그중에도 장사를 치르려면 상주인 남편이 있어야 할텐데 당시 남편은 일이있어 외딴섬에가 있었다고 한다.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남편에게
이러하다고 전화를 하니 마침 태풍이 불어 파도가 높아 오늘 중으로는 배가 없어 떠나지 못한다고 하며 작은 아버님과 상의하여 진행하고 있으면 배가 뜨는 즉시 집에 간다고 하니 어쩔것인가?



작은아버님이 오셔서 당장에 산소자리가 시급하니 옆 동네 사는 지관을 불렀다고 하시며

산이 가까우니 지관과 둘이 다녀오라고 하시니 원래 자리는 지관이 잡을 것이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고 한다.

 

하얗게 눈이 덮힌 산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한참을 올라가니 지관이 이쯤에 자리를 잡으면 좋을 것 같다고하며 나뭇가지를 꼽아주더란다.



당신 생각에는 좀 마음에 안찼던지


조금 더 올라가보면 안될까요?


이왕에 고생하시는 것 조금 더 고생하시고 조금 더 가보자고 하니
눈 속에 벌써 여러 번 빠지고 미끄러진 지관은 마지못해
"그럼 조금만 더 가보지요
" 하며 앞장서더란다.


또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지관도 사모님도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았는데
사모님 속으로는 이미 자기네 산에서 벗어나 남의 산인데 어쩌지 하면서도 없던 배짱이 그땐 어떻게 생겼던지 그 자리에 꼭 모시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광중을 파고 시아버님을 모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곳이 명당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자손이 모두 잘되고 재산도 불어났고 지금처럼 집도 신축하게되니 모든 것이
시아버님 산소가 좋아 덕을 본 것 같다고 하며 그 산소자리가 남의 산이어서 아마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으면 산주인이 남의산 이라고 못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날은 눈이 많이와서 사람들 눈에 띠지 않은 것이 하늘이 도운 것 같다고...
하면서 그 모두가 아버님 덕이라고 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남편이나 작은아버지가 지관을 따라갔으면 지관이 먼저 잡아준곳에 모셨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발복이 제대로 안되었을지도 모른다.


옛날이나 지금에나
여자가 지관을 따라 산에가는 일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복많은 며느리가 있어 집안에 복을 부른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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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뵈어도 좋은지요.”

점잖은 목소리로 예약을 원하는 남자가 있었다.

며칠 후에 예약한 남자가 찾아왔다.

자기보다 10살 정도 적게 보이는 남자와 함께 왔다.

자기는 작은 인쇄업을 하고 같이 온 사람은 장의사라고 했다.

찾아온 연유를 묻는 나에게 너무나도 당돌하고 엉뚱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암장을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야기를 들어 본즉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사업을 해도 안 되고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나름대로 풍수지리도 배워보았고 수맥도

배워보았다고 한다.

별 것을 다해보아도 안되자, 자신이 내린 결론은 부모님 묘를 이장해야겠다는 것이다.

자기 땅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부모님이 계신 00산에 좋은 혈자리를 잡아 달라는 것이다.

‘땅속을 보는 풍수’ 책을 보니 선생님께서 그 산에 명당이 있다고 밝혀 놓으셨던데, 그 자리를 잡아주면 선생님께는 넉넉히 사례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00산이 선생님 산이세요.”

물론 그 산은 국립공원으로서 그의 산이 아닌 것은 알지만, 하도 기가 막혀서 내가 한 말이었다.

같이 온 장의사라는 젊은이가 말을 막아서면서,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대한민국에 땅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다 제 산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반문하는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래요? 잡아주면 어떻게 모실 건데요?”

하고 물으니, 배낭에 넣어서 혈자리까지 간 다음에 암장을 하고 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젊은이는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제가 없는 사람들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게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인데, 참 겁이 없으신 분들이군요. 마침 풍수지리도

하시고 장의업도 하시는 분들이 오셨으니, 두 분이 손잡고 같이 가셔서 알아서 하시지 저한테는 뭣하러 오셨어요. 제책을 읽어 보셨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보시지는 않으신 것 같군요.

명당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00산의 명당자리는 선생님이 주인이 아니십니다.

지금 묏자리의 영향을 받아서 어려우시다면 화장을 하시면 되고 이장을 하시려면 내 땅을

사서 이장을 하셔야합니다.”

하고 말했더니, 자기에게는 아들이 있어서 아들이 발복을 해야 하므로 화장을 해서는 안

되고 굳이 이장을 해야 한다고 하며 선생님께서 잡아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물론 풍수도 배워서 남의 자리는 잡아주었지만 막상, 자기 조상을 하려고하니 겁이 난다는 말까지 했다.

남의 묘는 대충해주면 되고 자기네 묘는 자신이 없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화가 났다.

게다가 내 땅이 없으면 대한민국 땅이 전부 자기 것이라는 위험한 발상은 앞으로도 이렇게 암장을 해 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잠깐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구는 이렇게 암장을 하였다가 옮기기를 4번 이

상 하였다고 하고 누구는 암장을 하고 평장을 해놓았다가 다음에 가보니 산에 나무도 우거지고 잡풀도 많이 자라서 자기네 산소를 잃어 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식으로 암매장한 것이 우리강산에 얼마나 많이 묻혀 있을까?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서 암장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산화로 인해 화장을 하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어서 하지 못하면 이렇게 위험한 짓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남의 재산을 탐내 훔치면 죄가 되고 남의 명당자리를 몰래 쓰면 죄가 안 될까?

오히려 신의 세계에서는 용서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가능성도 있으니 차라리 화장을 하고 열심히 일한만큼의 대가를 받고 살도록 자손을 교육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얼굴을 보니 그렇게 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답답한 침묵만 흐른다.

“열심히 일하셔서 작은 산이라도 사시면 어떨까요?”

“그때, 이장을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나름대로는 설명을 해주었지만 글쎄 그 집 조상님은 암장을 해드리는 것을 원할까요?

라고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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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더위가 한창일 때 얼굴이 수척한 30대 후반의 여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끼고 예약을 빨리하여 며칠 후에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그녀는 8년 전에 결혼을 하여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6살 난 딸을 둔 보통의 주부였다. 그러나 그녀가 겪었던 사연을 들어보니,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다.

성은 김씨이고 친정은 수원이지만 시집은 대전으로 갔으며 남편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친정 쪽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폭군처럼 아이들이 맹종하고 따르기만을 고집하였는데 자녀는 딸 셋에 아들 둘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집안일 보다 00교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어서 자식들보다 00교에 더 헌신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연히 자식들은 자랄 때부터 부모님들에게 정이라고는 없게 되었다.

딸들은 어렸을 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막내 동생과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군대도 무사히 마치고 다니던 대학에 복학해서 잘 다니고 있는 줄만 알았던 동생이, 자취하라고 얻어준 방을 빼서 그 돈을 다 써버리고는 식구들과 연락도 하지 않고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되었다는 것이었다.

백방으로 동생을 찾던 중, 어느 날 형에게 전화가 왔는데 집에서 아버지와 만나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아 집을 나와 방황하게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는 연락처도 가르쳐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 걱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00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바로 밑에 남동생은 결혼날짜를 이미 잡아놓고 있었고 집에서 떨어진 00시에 직장을 잡고 있는 터라 병 수발을 할 수 없는 처지고보니 할 수 없이 그녀가 친정집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어머니 병 수발까지 들게 되었다. 이미 남편 혼자 있는 집에는 가본지가 여러 날 되었다고 하며 아들은 친정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시켜 학교를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마음이 답답한 그녀가 우연히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라도 평화를 얻을까 해서 00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자꾸만 돈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염증이 난 상태라고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것 같고 아버지는 지금도 자식들에게 명령을 내리듯 호령이시고 막내는 집을 나가서 어머니 임종도 못 볼 것 같고 남동생 결혼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닌가 싶어 결혼을 보름쯤 앞두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매일 담당의사에게 제발 결혼식 후에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병세가 깊어져서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기를 몇 차례 - 며칠 전에도 혼수상태에 있었다가 3일 만에 정신을 차렸다고 하니 식구들 모두가 숨이 막힐 지경에까지 온 것이다. 벼랑 끝 막바지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 그 심정을 이해 할 것 같았다.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이 문제를 풀어주세요.”

책만 보고 찾아왔다지만 믿고 의지하겠다는 말에 나도 이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어 주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먼저 막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방황하는 것은 조상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시급한 일이라서 서둘러 조상 제를 지내기로 하였고 며칠 후에 조상제가 치러졌다. 이때 밝혀진 것은 남동생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일찍 죽은 여동생 들이었다.

여동생들은 3-4살 때 병으로 죽었는데 아버지가 자신들을 잘 돌보지 않아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런 판단이 제대로 서있지 않은 나이에 죽었으니 바른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품고 있는 원을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에게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도록 데리고 돌아다닌 것이었던 것이다.

그의 몸에서 조상신이 10위(위=신을 세는 단위)나 나왔으니 그가 어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아버지 몸에는 옛날에 장군을 하던 5대조 조상님이 나오셨는데, 그 때문에 자식들에게 명령하고 맹종하도록 강요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조상제를 마치고 마음이 어떠냐고 물으니 마음 한쪽이 개운하다고 했다. 3일 뒤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도 전 같지 않게 많이 부드러워 지셨다고했다. 무슨 일이든 자식들과 의논하려고 하며 자식들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시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열흘이 못 되어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일까?

어머니 곁을 동생이 지키고 있으니 자신도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고 전화가 왔다. 그동안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그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했던 몫이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또 혼수상태라 며칠 남지 않은 큰아들 결혼을 앞두고 그렇게라도 살아있어 주길 기원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결혼식이 무사히 치러지고 어머니는 4일후에 돌아 가셨다.

그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산소 자리를 부탁드린다고....... 다른 사람들 같이 슬픈 목소리가 아닌 조금은 가벼운 목소리에서 그녀 몫의 짐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조상님 중에 한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니가 니 애비보다 백 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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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시에 사는 임씨 부인은 밤마다 꿈에 시달리는데, 살아서도 소문난 구두쇠였던 남편이 밤이면 밤마다 찾아와 내 칼을 달라고 졸라서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워 오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생전에 돈쓰기를 얼마나 아꼈는지 동네에 좀생이 아무개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어느 날 어떤 마음에서인지 긴 칼을 주문해서 만들었다는데 자루에 박힌 장식하며 호화스럽게 만든 것이 그 당시 돈으로 꽤 큰 돈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신 후에 둘째 아들이 장식용으로 집에 가져갔다. 그 날부터 밤마다 꿈에 찾아와 칼을 내놓으라고 하니,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부인이 아들집에 전화를 걸고 꿈 이야기를 하면서 칼을 가져오라고 하여 무덤 앞에 같이 묻었다.

임씨부인은 이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꿈에 임씨가 다시 나타나자 “이번엔 또 뭐에요?”하고 부인이 물으니 잠자리가 추워 죽겠다고 하면서 생전에 사놓고 아끼느라 못 입은 털조끼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생각해보니, 다른 옷들은 모두 태워 주었는데 남편이 생전에 사놓고 아끼느라 못 입은 모피 조끼가 떠올랐다. 옷이라고는 별로 없는 부인이 겨울에 입으려고 남겨놓은 것이었는데, 영감이라고 해준 것도 없으면서 당신 것이라며 그것마저 내놓으라고 하니 화도 났지만 자기 것 달라고 하는데 어쩌랴?

얼마나 가져가고 싶었으면 달라고 하랴 싶어 산소 앞에서 태워 주니 그 후로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죽어서도 기질이나 성품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풍수적으로 산소 자리가 나쁘다고 하면서 또는 물이 찼을 때 춥다고 하면서 죽은 자가 꿈에 나타나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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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태권도 도장을 경영하는 30대중반의 신씨는 어느 날 아침, 부인에게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얘야! 오늘 상갓집에는 절대 가지 말아라. 네가 죽을 수도 있어.” 하면서 상갓집에 가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고 한다.

“좀처럼 꿈을 안 꾸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야. 조심 해야겠어.”라며 출근하는 남편에게 꿈이 좋지 않으니 일찍 들어오라고 부인도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나쁘게 진행 되려고 했는지 그날 오후에 정말 절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니 정말 이래서 아버지가 꿈에 예시를 해주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도장에 있으면 틀림없이 친구들이 가자고 할 것이니 집에 숨어 전화도 받지 말고 있어야겠다고 했다한다. 친구들이 도장에 갔다가 사범의 말을 듣고 집으로 찾아오자 간밤에 이러이러한 꿈을 꾸어서 싫다고 했더니, 젊은 사람이 별 쓸데없는 것을 믿는다고 억지로 끌고 갔다고 한다. 가서도 조마조마 하면서 술도 안 먹고 정말 조심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친구들과 헤어지고 돌아와서 집 앞에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고 한다. 꿈에 알려준 아버지는 정말 신씨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두 번째 이야기)

“내 명대로 못살고 죽어서 억울해!”

갑자기 죽은 홍씨의 넋을 위로해주는 진혼굿에서 홍씨가 무속인의 몸에 실려 하는 이야기이다.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이야기를 하라고 하니, 구슬피 울면서 홍씨가 하는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그날따라 홍씨는 아침부터 일찍 산에 갈 차비를 서둘러 하는 것이었다. 배낭에 이것저것 챙겨 넣는 홍씨를 보고 부인이 “날씨가 비 온대요. 뭣 하러 좋은날 가지, 이런 날 산에 가려구해요? 웬만하면 다음에 가요!”

“아니야, 바람도 쏘일 겸해서 가까운 산에 다녀오리다.”

오늘 처음 산에 가는 것도 아닌데, 부인이 극구 말리니 그날은 끝내 산에 못 가고 집에 있었다. 저녁식사 준비할 시간이 되어 부인이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사오겠어요.” 하면서 방문을 열었더니 이미 남편이 움직이지를 않더란다.

구급차 불러서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벌써 40여분 전에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했다. 부인은 유언 한마디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넋이라도 달래준다고 오늘 굿을 벌인 것이었다.

죽은 홍씨가 하는 말이, 그날 이웃집 박씨가 죽는 날이었는데 박씨가 집에 없자 저승사자가 나를 대신 잡아 간 것이라고 하면서 내가 산에 갔으면 살았을 것인데 당신이 붙잡아서 죽었으니 너무 억울하다고 계속 넋두리를 하더란다.

정말 홍씨는 다른 사람 대신 죽은 것일까?

(세 번째 이야기)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순이는 어느 날 할아버지께 꿈 이야기를 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어떤 젊은 여자가 찾아와서, “너희 집에서는 배고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내일까지 닭 한마리만 먹도록 해주면 너를 살려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너를 잡아 가겠다.”라고 했다한다. 꿈에서지만 정말 무서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순이는 “할아버지 저 닭 한마리만 사주시면 안 돼요?” 하고 애처로운 눈길을 보냈더니 할아버지는 “없는 형편에 닭은 무슨 닭이야?" 하며 얘가 닭이 먹고 싶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다음날 보리쌀 씻으러 우물에 간 순이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다가 그만 우물에 빠져서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과연 꿈에 본 그 여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귀신이 없다고 하면서 미신이라고 치부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일들이 이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神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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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명당이랍니다. - 전북 00에 사는 김씨이야기

김씨는 8남매의 장남으로서 4개월 전부터 중병으로 앓고 있는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생들은 모두 제 일이 바빠 가끔씩 들여다 볼뿐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일은 전부 접고 혼자서 대소변 받아내며 병원에서 오직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김씨는 의사로부터 아버지 병세가 무척 심하여 오늘내일 간에 돌아가실 것 같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내가 전화를 받은 것은 그 즈음이었는데 빨리 내려와서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밀려있는 일이 있어서 바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3일 후에나 시간이 날 것 같으니 상을 당하면 다른 분을 불러서 일을 보시는 것이 좋겠다’ 고 전하였으나 ‘선생님을 꼭 모시고 싶은데 자리라도 일러 달라’ 하면서 간청하는 것이었다. 모실 산은 있냐고 물으니 밭이 두 군데 있고 할아버지 모신 산이 하나 있는데 땅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이었다.

“밭은 자리가 없고 할아버지 산소 밑에 자리가 딱 한자리 있습니다.

그곳이 아버님 모실 자리입니다. 제가 못가면 그곳을 잡아 드리세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3일이 지나고 전화가 왔다. 아직 생존해 계시니 내려와서 자리를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내려가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며 “병원에서 금방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아버님이 복이 있으신지 선생님을 기다리고 아직 생존해 계십니다. 조금 기다려서 동생들과 같이 가십시다” 한다.

조금 기다리니 다른 형제 둘이 더 내려왔는데 바로 밑의 동생은 사업을 한다 하고 4째 동생은 형사라고 했다. 직업 탓인지 나를 못미더워하는 눈치였다.

자리가 없다고 전해주셨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신 김에 밭이랑 둘러봐 달라고 해서 밭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밭 하나는 수맥이 지나가서 쓸모가 없었고, 다른 밭을 둘러보던 중 그 밭에 딸려 있는 산에 좋은 묏자리가 보였다.

밭에 붙어있으니 이 산도 이 집 산이면 괜찮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이 산은 누구네 산입니까?’ 물으니 원래는 자기네 산이었는데 이를 팔아서 밭을 산 것이라고 하였다. ‘복이 안 되니까 팔았겠지!’ 하면서 밭을 살펴보니 역시 쓸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밭을 다 둘러보고 나니 할아버지 묘가 있는 산으로 가볼 수밖에 없었다. 형제들은 여전히 별로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몇 천 평 되는 밭 두 군데에도 자리가 없는데 좁디좁은 할아버지 묘소 쪽인들 자리가 있겠느냐….

자동차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할아버지 묘가 자리하고 있었고 살펴보니 바로 왼쪽 아래로 자리하나가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하니 동생들은 이내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좁은 곳에다 모시느니 참전용사이시니 차라리 국립묘지에 모시든지 공동묘지가 낫지 않겠느냐’

그러나 김씨가 나를 믿었고 며칠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며 알려준 그대로 묘를 쓰겠다는 기별이 왔다.

그리고는 바쁜 일정에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 지난 토요일 날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제가 아버님 49제 되는 날입니다.”

절에서 49제를 지내는데 절에 온 무속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얼굴을 보더니 이 집은 산소가 너무 좋은데 모셔져 있다 하면서 그 묘를 쓰고 나서 좋은 일 없었느냐고 묻더란다. 생각해보니 8남매가 하나같이 모두가 일이 잘 풀리고 있고 자신도 서울에서 부동산 일을 하게 되었으니 모두 조상님 묏자리 덕이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너무 고마워서 전화 했습니다. 옆에 계시면 업어 드리고 싶습니다.”

“업히는 것 싫고 다음에 맛있는 식사나 같이 하시죠?”

목소리가 흥분되어 기뻐하는 표정이 전화를 통해서도 생생히 느껴졌고, 나도 이내 그 기쁨이 전이되어 목소리 톤이 높아지며 불쑥 말을 던지고 있었다.

사실 묏자리를 잡을 때, 사업을 한다는 동생과 형사인 동생이 하나같이 이 자리에 묘를 쓰면 갑부가 되느냐고 물어왔다.

“아니요. 지금처럼 밖에 못삽니다.”

그들이 조상님께서 편하신 자리인지를 먼저 묻지 않았고 아마도 살아계실 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사람들인 것 같아 무심결에 대답이 그리나왔던 것이다.

내 하는 일이 사실 이렇다. 김씨도 나를 믿는다 하며 잡아준 자리에 아버지를 모셨지만, 한 무속인으로부터 터가 좋은 자리임을 확인받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며 기뻐하지 않는가.

어찌 되었든,

“김 선생님! 오늘 같은 좋은 기분으로 모쪼록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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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올라왔던 글 중에서 40대의 순수한 청년 이야기 후편쯤 되는 사연이다.

올해 윤달이 들어서 지난 4월 6일에 증조부, 증조모, 조부모 4기의 조상묘를 드디어 화장했다는 연락을 한 청년으로부터 받았다. 화장을 하고자 하는 의사를 집안에 비치니, 큰집도 되는 일이 없고 이장할 자리를 마련하기에 형편도 좋지 않은 터라 그렇게 하자면서 순순히 동의하여 화장을 하게 되었단다.

그 청년은 17년 동안 사법고시를 보아온 청년으로 하지만 지금껏 꿈을 이루지 못하고 몸도 아파서 이번에 주변을 정리할 목적으로 화장을 하게 되었단다. 또 한편으론 이제껏 자신이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내가 3번째로 조상님의 묘가 나쁘다고 말한 사람이었다는데 이 말이 늘 마음에 걸렸단다.

어찌 묘에 와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당시에는 믿기지 않았었는데, 그러나 이번에 화장을 하려고 묘를 파보니 기절할 노릇이었단다. 할아버지 묘는 물에 잠기어 뼈도 흩어져 있었으며 머리 쪽은 사그라져 검은 한줌의 흙으로 변해 있었단다. 자신이 공부하려 해도 머리가 아파서 못했었는데 할아버지 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묘도 모두 같은 상황이었으니 그 여파인지 그동안 부모님도 늘 편치 않으시고 자신도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청년은 화장을 하고나서 며칠 후 우연히 아는 분의 주선으로 변호사 사무실에 나가게 되었고, 한번은 첫 월급을 탔다고 하면서 오늘 마침 그 근방에서 볼 일이 있던 차에 선생님 식사 대접해드리고 가려한다고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그는 어쩌면 땅속의 일을 그렇게 잘 아시는지 신기했다고 하며 부모님만은 꼭 명당자리에 모셔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화장을 하고나니 한편으론 화장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론 조상님을 좋은 곳에 모셔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크다고 하면서 “이제 장가도 가게 좋은 여자 있으면 선생님께서 중매 좀 해 주십시오.” 하며 웃는 그 모습이 정다웠다.

얼굴도 전에 비해 좋아 보이고 자신감도 있어 보이고 새로 사 입었다는 양복 때문인지 젊어 보이는 그의 작은 소원대로 결혼해서 잘사는 모습을 빨리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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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인 P씨는 유명기업의 사장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분인데, 명당화 전시회 때 그림을 보러 오셔서 부친 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향에 아버지께서 당신이 죽으면 묻어 달라고 하신 작은 산이 있었는데 아마 아버지께서 이를 위해 사두신 땅인 것 같다고 했다. 그분의 아버지는 내가 죽으면 그 산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시곤 했다는데….

그런데 P씨는 사업을 하다보니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그 산을 팔아서 급한 자금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 후론 고향에 내려 갈 때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저놈은 아비 들어갈 묏자리까지 팔아먹은 놈이라고 야단하시니 그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지 아버님 살아계실 때 그 산을 다시 사드리리라 다짐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게 되어 자신에게 산을 산 새주인에게 다시 팔 것을 간청하니 3배나 많은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얼마 되지도 않은 기간에 무슨 3배씩이나 달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얼마간 웃돈을 드릴 테니 다시 팔라고 사정하였지만 어림없다는 듯 말도 꺼내지 못 하게 하니 더욱 걱정이 되어 밤낮으로 오직 아버님 묏자리 생각뿐 다른 일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는데 예전에 꿩 잡으려고 약을 놓던 산이 있다고 하며 그곳을 보여 주시는데 꿈에서 깬 후에도 너무도 생생하더란다.

그곳은 조금 떨어진 동네 산인데 겨울에 할아버지와 같이 꿩 잡는다고 콩에 약을 섞어서 눈 이 제일 먼저 녹는 양지쪽에 약을 놓았던 산이었다. 꿈에서 약 놓던 그 자리를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시면서 사라고 하셨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필시 무슨 일이 되느라고 할아버지가 알려주셨을 것이라 굳게 믿고 그 산주인을 찾아가 그 산을 사겠다고 하였다 한다. 산주인은 처음에는 팔지 않겠다고 하더니 여러 번 찾아가 조르니 마지못해 파는 냥하며 자기네 산보다 약1.5배 정도 더 준 값에 사라고 하여 구입을 하였다고 한다.

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어 그 자리에 광중을 파니 흙도 좋고 자리도 딱 한사람 들어갈 만큼 정해진 자리였다고 한다. 조상님이 알고 가르쳐주신 것 같다고 하며 아마 원래의 산을 팔지 않았으면 이 산을 새로 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이 또한 조상님의 뜻이 아닌가 한다고 이야기를 마쳤다.

후에 발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물으니 자손들이 모두 잘 되어 판검사가 나오고 지점장이 나오고 하여 일가가 모두 성공하여 모두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명당을 바라지 않고 오직 아버지 묏자리를 다시 만들어 드리겠다고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조상을 감동시켜 자리를 정해주신 것은 아닐까?

내가 잘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오직 아버님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명당의 주인이 된 이야기로 살아있는 교훈 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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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한 집은 강씨네로, 일 년 전 낳은 아기 이름을 짓겠다고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전화로 개명을 의뢰하였다.

먼저 그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필자와 절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고 어떤 이가 개명 의뢰를 해왔다. 몹시 성격이 급한지 연달아 전화가 오고 빨리 지어주기를 재촉하였다. 전시회 준비도 있고 해서 분주한 중이지만 친한 사람의 연결로 일을 받았기에 성의껏, 그것도 저렴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선선히 들어주었다.

원래 이름이 지어지면 받으러 와서 받아가야 하지만 그는 거리가 멀어 주소지로 발송해 주기로 하였다. ‘강00’란 이름이 지어지고 내일 발송해주려고 정리를 하고 있는 참인데 전화가 와서는 아기 이름이 다 지어졌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전화로 이름을 말해주니, “좋은 것 같네요.” 했고, 그날은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급하게 할 일도 끝냈으니 미루었던 일도 좀 하고 퇴근하려는데 다시 그 아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일은 없었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긴 것이었다.

“그럼 어쩌라는 것인지요?”

“다른 이름으로 다시 지어주실 수는 없나요?”

지금 하는 일도 많은데 생각 같아서는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소개해 준 이를 생각해서 마음 속으로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내가 조금 고생하면 모두가 편해진다고 애써 진정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름이 다 되었느냐고 묻는 전화에 크게 화 한번 내지 못하고 며칠 후 다른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제 정말 끝입니다.”

다시 다짐을 하면서 아기 이름을 불러 주었다.

이제부터 작명 의뢰가 들어오면 정말 신중하게 일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잊고 지냈는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다시 그 아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요~선생님, 먼저 그 이름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무슨 자’, ‘무슨 자’이지요? "

한자(漢字)를 묻는 전화였다.

이럴 때 정말 가만히 있으면 병이 될 지경이다.

“저요, 잘 모르겠습니다.”

딱 자르고 싶은데 결국 알려주었다.

두 번째는 전혀 다른 사례이다.

지난 달에 몸을 푼 산모는 내게는 딸과 같은, 귀여운 젊은 엄마이다.

친정 부모님과도 친동기간 같이 지내는 사이이고 결혼할 때부터 ‘아이 낳으면 이름 지어주세요’하고 미리 부탁을 받았을 정도이다. 남자 아기를 낳았다고 전화가 와서 그때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이틀 후 이름이 지어졌고 먼저 이름 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이름을 두개 지어 골라보도록 하라고 하면서 건네주었다.

“유성이와 희성이”

이 댁은 편의상 아기 이름을 알려 드린다.

성은?

“굳이 아시고자 하시는 분은 전화를 주십시오!!”

그런데 이 댁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기의 엄마, 아빠도 유성이와 희성이로 의견이 갈려 서로 양보하지 않고, 친정 부모님도 의견이 나뉘어서 합의가 안 되고 또 시부모님도 의견 통일이 안 되고, 서로 유성이가 좋다 아니다, 희성이가 좋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반반으로 나뉘어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며칠 후 아이네 집안 사람들을 일 때문에 만나게 되었는데 아기 이름을 너무 잘 지어서 아직까지도 의견 일치를 못 보고 있어서 병원에서 이름 없는 아기라고 ‘행복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선생님이 이름 하나만 지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왜 이름을 하나만 지어주지 둘이나 지어주셔서 이렇게 복잡하게 하시냐고- 살짝 원망 섞인 듯한 이야기를 한다.

난 마구 웃으면서 “이름이 둘이니 복잡하시지요. 저도 얼마 전에 이름 둘 지어주느라고 복잡했어요.”하고 시원하게 웃은 적이 있다.

결국 아기는 유성이로 부르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 그 사람에게 맞는 이름은 하나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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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 수 없는 일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많다지만 아버지 유골을 잃어버리고도 발복했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산을 보러 예산에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몇 시간을 산에서 보냈지만 의뢰인인 한씨네가 찾는 좋은 자리도 없고 겨울해도 짧아 해가 저물기 시작하여 산을 내려오면서 맘도 상했을 것 같아 위로를 하면서 모든 것이 억지로 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한씨네도 원래는 7남매가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면서 정으로 똘똘 뭉쳐 잘살 때도 있었다고 하며 이제는 병환으로 누워 계신 어머니 모실 자리조차도 없어 가슴이 탄다고 하면서 같은 동네 김씨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평생 살았어도 되는 일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던 김씨는 충청도 말로 지지리도 궁상스럽게 살았다는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이 있나, 재산이 있나, 열심히 일해도 입에 근근이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한다.

해마다 남의 집 땅에 농사를 지어 보았자 지난해 진 빚을 제하면 또다시 빚을 얻어야 살 수 있었다고 하니, 집이 다 쓰러져가도 손 댈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는데 몇 해 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생겼으니...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아버지 묘를 누가 이장해 간 것이었다. ‘아니, 지난 추석에도 왔다갔는데...’

허망해 하며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서울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모셔 갔다고 했다는데 멋진 자가용이며, 옷차림하며 잘사는 집 같았다고 말 하더라나. 며칠을 정신없이 알아봤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 아버지 묘지 옆에는 묘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있어서 누가 잘 모르고 자기 아버지 묘인 줄 알고 모셔간 것이라고 다들 이야기 하면서 화장한 셈 치고 잊어버리라고 하니, 남의 일이니 말이 쉽지 어찌 꿈엔들 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이 그 이후에 집안 형편이 풀려가더니 동네에서 좋은 땅도 사고 식당건물을 지어서 세를 놓을 정도가 되었으니 시골에서는 갑부가 된 것이었다. 하도 이상스럽고 신기해서 점을 잘 본다는 점집에 가서 물어 보았더니 조상 묘를 잘 이장해서 발복이 된 것이란다. 그래서 묘를 이장한 일은 없고, 누가 아버지 유골을 모셔간 것이 발복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씨도 이야기 끝에 “하도 되는 일이 없어 우리도 좋은 곳에 어머니 잘 모시면 혹시 형편이라도 풀릴까 하여 궁리 끝에 선생님께 의뢰를 하였건만 참 복이 안 되나 봐요.”하고 그제야 답답한 속내를 드러낸다. 돌아오면서 생각하기를, 김씨네는 발복이 되어 좋다지만 공동묘지에 남아 있는 진짜 조상님은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얘들아, 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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