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불가사의한 자연의 작용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용하기도 하며 자연의 변화에 발을 맞추어 살아온 것이다. 또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섭리를 따르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으니, 땅 위의 것을 취하고 땅을 경작하는 데서 땅의 힘과 신비, 즉 풍수지리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이 자연 속에서 살기 시작한 태곳적부터 이미 풍수학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가. 최근 몇 세기에 걸쳐 우주와 자연계에 관한 연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직접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풍수학은 여전히 비과학적이라는 편견 속에 갇힌 채 오히려 옛것마저 지키지 못한 상태로 퇴보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땅 위에서 살아간다. 이는 누구라도 땅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길하고 흉한 땅의 기운 여하에 따라 크게 이룰 수도 있는 것이며 좋지 않은 일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넓게 본다면, 나와 내 가족에만 국한되지않고 우리 민족의 장래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땅의 기운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필자의 풍수 연구는 우리 민족이 세계 속에 발전해나가는 길은 땅에 있다는 생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작게는 개인에게 이익을 주고 크게는 이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도우면서, 풍수를 비과학의 테두리에 갇힌 '미신'이 아니라 하나의 학문으로 승화 ·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 만물이 형성되고, 현상계와 우주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우주의 공간을 채우는 피조물이라면 어김없이 자연의 섭리를 따르게 된다. 인간 역시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과거의 삶은 그랬다. 자연을 숭배하여 그 힘을 빌어 생활의 안정을 이루고 외침(外侵)에 방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영향 속에서 자생(自生)하게 된 풍수지리의 발전은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풍수학의 요체는 천지만물의 기(氣)를 공간적으로 파악하여 땅속을 흐르는 기, 즉 지기(地氣)의 덕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주역(周易)을 기초로 천지만물의 기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학문인 동시에 바람과 물, 땅의 기를 연구하여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학문이기도 한 것이다.

우주 만물은 음양오행의 기로써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그 자신의 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흔히 말하는 좋은 자연 환경이란 산의 용세(龍勢)가 좋고 수세(水勢)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장풍회수(藏風回水)하는 곳을 말함인데, 음양오행의 천기가 상합(相合)하여 생기(生氣)가 충만한 곳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풍수는 인간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자연의 직접적인 영향과 함께 조상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게 되는 땅의 기를 중시함으로써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증진시키려는 사람의 지혜인 것이다.

이때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는 것을 주택 풍수, 흔히 양택풍수라 하고, 앞서 가신 분들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을 고려하는 것을 묘지 풍수, 다시 말해 음택풍수라 한다. 그런데, 만약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손의 번영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묘지 풍수가 주택 풍수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할 수 있다.

묘지는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상님의 음택(陰宅)이며, 주택은 그분들의 살아있는 자손이 살고 있는 양택(陽宅)이므로 양자의 관계는 나무의 뿌리와 잎처럼 근간(根幹)과 지엽(枝葉)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풍수학의 현재는 어떠한가? 각 풍수사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고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니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말이다.

이제, 풍수학은 변화해야 한다. 종전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풍수지리를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종전까지의 풍수가 대체로 땅 위의 생김새를 보고 땅속의 혈처(穴處)를 알아내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겉 표면이 아닌 땅속을 직접 꿰뚫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산업의 발달과 주택가의 밀집 등으로 숱한 국토개발이 이루어진 이때, 좌청룡 우백호, 안산 주작 등을 땅의 겉에서 찾는다면, 제대로 된 명산이 몇이나 될 것이며 온전히 간직된 혈처는 또 몇이나 되겠는가? 본래 땅속의 혈처란 사라지거나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전의 풍수학은 땅 위의 혈이 잘리면 그 혈맥도 끊긴다 하여 산세와 지형만을 따지는데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하고자 한다. 비록 표면의 혈이 잘렸다 하여도 그 기(氣)는 남아있을 것이니, 이제는 땅 위가 아닌 땅속을 보는 풍수를 연구해야 할 때인 것이다.

필자 역시 한 때는 종전의 풍수학을 공부하고 답습했던 사람이다. 현재 각지에서 활동하는 풍수사들 중에는 필자와 함께 풍수 연구를 시작했던 분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전혀 다른 방식의 풍수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종전의 풍수학을 연구하며 그 한계를 뼛속 깊이 느끼고 방황과 갈등을 거듭하던 필자가 마침내 만난 전혀 새로운 풍수지리의 세계이다.

뒤에서 따로 장을 마련하여 좀더 긴 설명을 하겠지만, 필자에게는 스승님이 따로 계신다. 보이지 않는 세계인 신법(神法)을 다스리시며, 관법(觀法)과 풍수(風水), 운명(運命), 치유(治癒)와 음율(音律) 등 거의 전(全) 방면에서 이미 세상도(世上道)의 경지를 넘어서셨음에도 고요한 곳에서 몸을 낮추시고 드러나지 않게 우주 만물의 기(氣)와 신(神)을 운용하시니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신인(神人)은 필자의 스승님을 일컬음이 아닌가 싶다. 그분은 한 분야에 단 한 사람만의 제자를 길러내는데, 필자를 제자로 받아주신 후 전수시켜 주신 것이 바로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새로운 풍수인 것이다.

종래의 풍수가 땅 위의 지형을 살피는 것이었다면, 필자가 새롭게 배워 직접 익혀온 풍수는 땅속을 살피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종전의 방법을 답습하여 땅 위의 지형을 살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觀)을 통하여 땅속을 꿰뚫어보는 방법이니, 세상에는 없는 참된 풍수의 시작이라 자신 있게 밝히는 바이다.

물론 혹자들은 물을 것이다. 땅속의 지형을 어떻게 꿰뚫어볼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명당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 번 말해보겠다. 종래의 방법대로 혈처를 찾는다면, 묘를 쓸 수 있는 곳은 묘지로 쓰일 수 있는 땅의 20% 미만이라 한다. 그나마 풍수사들의 의견이 각기 다르니 묘를 쓴들 발복(發福)이 된다는 보장조차 없다.

이런 상태에서, 아니 그러한 상태는 차치하고라도 과연 겉으로 보이는 지형만을 살피는 풍수가 과연 풍수의 유일무이한 해결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껏 해온 방식만이 옳다는 선입견을 버리지 못해, 분자(分子)나 원자(原子)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옛사람의 어리석음을 반복할 것인가?

우리는 흔히 인생에서 부닥치는 험한 일들을 팔자소관이라는 말로 넘기며 체념하고는 한다. 그러나, 팔자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다면, 그러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자(因子)는 보이는 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데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자신에게 올 화를 막고 복을 기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이유가 아닌가.

이제 풍수에도 새로운 장을 열 때이다. 종래의 것에 매여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바야흐로 강한 나라, 행복한 가정, 개인의 성공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풍수가 나올 때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여러분들 앞에 그러한 참된 풍수가 펼쳐져 있음을 자신 있게 밝히는 바이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